신앙도서 독서모임
저자소개. 유진 피터슨
유진 피터슨은 ‘일상의 언어’로 성경적 기독교 영성을 풀어낸 현대 기독교의 영적 거장입니다.
그의 핵심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메시지(The Message) 성경의 저자: 딱딱한 성경 문체를 시장터에서 쓰는 생생한 현대 언어로 번역하여, 성경이 우리의 구체적인 삶에 읽히도록 했습니다.
목회자들의 목회자: 숫자나 성공 같은 세속적 가치 대신, 한 영혼을 깊이 돌보는 목양의 본질과 정직함을 평생 실천하며 많은 지도자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영성이란 특별한 체험이 아니라, 지루해 보이는 일상 속에서 '같은 방향으로 걷는 긴 순종’임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30년간 그리스도 우리 왕 장로교회에서 목회자로 섬겼고, 리젠트 칼리지에서 영성 신학을 가르쳤다. 2018년 10월22일 이른 아침, "가자"(Let's go)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주님의 품에 안겼다.
<영성은 우리가 사는 일상에서 하나님께 반응하며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유진 피터슨
이 책은 신약성경 갈라디아서를 중심으로,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의 의미를 현대인의 삶 속에서 재해석하여, 하나님은 우리가 자유로운 존재가 되기를 원하시며, 복음 안에서 참된 정체성을 깨달아야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1.모든 것에 대한 자유(요8:31-31,36)
우리는 자유에 대한 환상이 넘치는 세상에 살고 있으나 우리는 슬프게도 자유를 거의 경험하지 못한다. 자유의 땅에 살고 있다고 해서 특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이 땅은 중독자들과 불평자들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유에 관한 모든 것이 환상은 아니다. 자유가 실재하기도 한다. 그리 분명히 보이는 것 같지는 않지만, 적어도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그 자유가 있다. 하나님은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분의 자유로운 뜻을 따라 이 세상을 만드시고 그 안에 살 인간들을 창조하셨다
저자는 인간이 “모든 것에 대해 자유롭다”고 말할 때 그것이 방종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의 책임 있는 자유임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모든 선택이 가능하지만, 그 선택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의미를 갖습니다.
자유는 제한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께 응답하는 삶의 능력이라고 합니다.
2. 살아갈 자유(갈1:1-5)
자유에 대한 이야기에서 하나님은 언제나 主語(주어)이고, 인간은 언제나 目的語(목적어)다
인간이 자유롭게 살 수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행동 때문이지, 우리의 의지나 마음가짐이나 정치적 행동이나 지성 때문이 아니다.
인간은 단순히 생존하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참된 자유는 삶을 회피하지 않고, 주어진 현실 속에서 의미 있게 살아가는 능력입니다.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자유는 현실 도피가 아니라 현실을 충실히 살아내는 힘입니다.
3. 저주할 자유(갈1:6-12)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사악한 행위는 하나님에 대해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원래와는 다른 모습이나 그보다 못한 모습으로 제시하는 일이다.
하나님에 대해 거짓말하는 것이 사악한 일이 되는 이유는, 하나님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러면 초라하거나 악한 삶을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에 대해 거짓말을 하는 것은 실제와 삶의 왜곡이자 삶의 모든 과정을 손상시키는 일이다.
바울이 하나님에 대한 거짓말을 깨닫고 그 진리로 말미암은 새로운 삶의 방식을 경험하게 되자, 그가 배우고 경험한 바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 험난한 여정을 시작했다.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개념을 가지고 있으면 인생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갖게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분노와 고통을 억누르기보다 하나님께 정직하게 표현할 자유가 있습니다.
성경의 시편처럼, 하나님께 탄식하고 항변하는 것도 신앙의 일부입니다.
자유는 감정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솔직해지는 것입니다.
4. 변화될 자유(갈1:113-24)
자유는 현재 상태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변화와 성장을 향해 나아가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점진적으로 변화시키며, 우리는 그 변화에 참여합니다.
자유는 “지금 이대로”가 아니라 새롭게 되어가는 과정입니다.
변화된 삶의 이야기에서 쓸데없는 요소는 하나도 없다. 우리의 이전 삶(유대교든, 이교든, 세속주의든, 나르시시즘이든)은 자유라는 예술 작품에 사용되는 원재료이다. 자유로운 믿음의 삶에서 쓸모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변화가 일어날 때, 우리는 찬양할 자유, 기도할 자유, 믿을 자유, 모든 것을 바로잡을 시간을 가질 자유, 자유를 창조하는 말을 거듭해서 들을 자유가 있음을 안다.
5. 저항할 자유(갈2:1-10)
인간의 존재는 육체적, 심리적, 사회적으로 얽히고설켜 있다. 모든 사람이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 수 없다. 자동차 운전자 모두에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다면, 혼란과 대형 사고가 일어날 것이다.
복음은 자유를 존재의 중심에 둔다.
그리스도인은 각자 독특한 은사를 가지고 있으며 선례가 없더라도 주의 사역에 그 은사를 사용할 수 있다. 또한 악과 불의에 대해 저항할 자유와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의 가치에 무비판적으로 따르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기준으로 살아갑니다. 특별히 도움을 구하는 목소리들을 듣지 않고 돌아설 자유는 없다.
자유는 순응이 아니라 진리를 따라 거부할 수 있는 힘입니다.
6. 탐구할 자유(갈2:11-21)
우리가 사는 세상은 세상 그 자체에 사로잡혀있다. 이 세상이 이야기하는 것은 모두 세상의 감정, 세상의 정치, 세상의 전쟁, 세상의 예산, 세상의 돈이다.
존재의 가장 큰 부분인 하나님은 언급되지 않는다.
이런 대화에 매몰되어 가는 사람들, 세상이 대화를 주도하도록 하는 사람들, 세상의 가치 기준을 받아들이는 사람들, 세상이 위급하다고 하는 것은 무조건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 두려워하고 걱정하고, 자유로이 행동하지 못하고 당황한다. 그런 조건 아래서는 자유롭게 살아갈 방법이 없다.
그리스도는 세상이라는 병원의 한계에서 사람들을 끌어내어 하나님의 열린 공간으로 인도하신다.
세상의 강박적인 자기 몰입에서 나와 광대한 공간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며 살기로 결단할 때, 우리는 신비의 세계로, 성숙함으로, 분류하거나 관리하는 우리 능력을 넘어서는 풍부함으로 들어간다.
세상의 정신병자같은 수용소에서 떠나 하나님에 대하여 사는 자유로운 삶의 여러 요소들을 탐구한다.
즉 세상 병원을 떠난 우리는 자유의 여러 영역을 탐구할 자유가 있다고 말한다.
신앙은 맹목적인 것이 아니라 질문하고 탐구하는 과정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지적 탐구를 제한하지 않으시며, 오히려 더 깊은 이해로 이끄십니다.
자유는 질문할 수 있는 용기이며 진리를 향한 여정입니다.
7. 생각할 자유(갈3:1-14)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사고방식에 휩쓸리지 않고 하나님의 시각으로 생각하는 자유를 가집니다.
이는 비판적 사고와 영적 분별력을 포함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미쳐 가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에게 생각할 자유를 주는 복음을 가지고 있고, 복음은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를 풍요롭고 건전한 정신 상태를 갖도록 성숙시킨다.
자유는 아무 생각 없이 따르는 것이 아니라 깊이 생각하는 능력입니다.
8. 실패할 자유(갈3:15-27)
실패는 가장 자유로운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그러나 실패할 자유가 있는 사람은 가장 자유롭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자유를 방해하며, 실패할 수 있는 자유는 자유를 격려한다. 믿음의 삶은, 종종 실패로 귀결되더라도 위험을 감수할 것을 격려한다. 그것은 위기와 미지의 것을 향한 인간의 모험을 격려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한 상황(예수님이 잡히셨을 때 베드로 처럼)이나 익숙하지 않은 상황(변화산상에서의 베드로처럼)에 처할 때 우리는 종종 창피하게도 실패한다. 그러나 그러한 실패가 결코 재앙이 아닌 것은 그 실패가 우리 인간성의 새로운 깊이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깨닫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간성과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자유로운 삶이 있다. 결코 실패해 보지 않은 사람은 위대해질 수 없다. 실패는 위대함의 진정한 시금석이다.
인간은 실패할 수 있는 존재이며, 하나님은 실패 속에서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실패는 끝이 아니라 성장의 과정입니다.
믿음은 “실패하지 않는 삶”이 아니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따라가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자유는 완벽함이 아니라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은혜입니다.
9. 받을 자유(갈3:28-4:11)
자유란 하나님으로부터, 곧 스스로 자유로우시고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것이다.
참된 자유는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선물로 받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자유란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것이다
세상은 자유를 흔히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것스스로 내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르게 말합니다.
인간은 죄로 인해 스스로는 참 자유를 만들 수 없습니다.
우리는 겉으로 자유로워 보여도, 욕망, 두려움, 인정받고 싶은 마음, 습관, 죄의 힘에 묶여 살아가기 쉽습니다.
그래서 참 자유는 “내 힘으로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셔야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요 8:36)
즉, 자유는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 선물입니다.
또한 스스로 자유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만이 완전한 자유를 가지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존재에게도 얽매이지 않으시고
외부 환경에 지배받지 않으시며
죄나 두려움이나 부족함이 없으십니다.
인간은 늘 무언가에 매입니다.
돈, 평판, 욕심, 상처, 미래의 불안…
하지만 하나님은 완전히 자유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그분만이 우리에게 자유를 주실 수 있습니다.
마치 빛이 없는 자가 빛을 줄 수 없듯이,
참 자유가 없는 존재는 자유를 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복음의 기쁨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억압하려고 부르시는 분이 아닙니다.
율법으로 짓누르거나 두렵게 하시려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죄의 종살이에서
사람의 평가에 묶인 삶에서
자기중심성의 감옥에서
풀어 자유롭게 하시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목적 자체가 우리를 자유케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권리로 반항적으로 요구하는 것도, 편집증 환자처럼 우리의 소유로 지키는 것도 아니다. 자유는 반항적인 주장이 아니라 일종의 수동적인 신뢰로 시작된다.
믿음은 강요될 수 없는 선택이며,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을 자유를 주십니다.
이 자유는 동시에 책임을 동반합니다.
자유는 강요된 신앙이 아니라 자발적인 믿음입니다.
10. 신뢰할 자유(갈4:12-31)
믿음이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라면, 신뢰는 그분께 삶을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계획에 얽매인다.
이삭과 이스마엘의 이야기는 하나님이 우리를 다스리도록 신뢰할 때 오는 자유에 대한 이야기이자, 우리가 우리 자신을 다스리려 할 때 찾아오는 자유의 상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유명한 약속은
그가 믿음의 조상이 될 것이고,
세상의 모든 민족이 그의 후손으로 인해 축복을 받으리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아브라함에게는 자녀가 없었다.
다만 그가 가진 것이라고는 아이를 갖게 될 것이라는 약속뿐이었다. 약속이후 그에 대해 아무것도 보여 주지 않으셨다. 그리고 그의 부인 사라는 생물학적으로 임신이 불가능한 늙은 여인이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사라가 계획을 세운다.
사라의 젊은 여종 하갈을 통하여 아이를 갖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이스마엘을 낳앟다.
그 계획은 아주 상식적이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후 사라도 임신을 하고 이삭을 낳았다.
한 아들은 하나님의 약속으로 태어났고, 다른 아들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의심과 조급함의 산물이었고 인간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려 한 결과였다.
이삭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때에 자신의 일을 하신 결과였다. 이스마엘은 문제를 일으켰고 이삭은 자유로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을 이어 갔다.
우리는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할 자유를 가집니다. 자유는 자기의 계획과 통제를 내려놓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입니다.
11. 서 있을 자유(갈5:1-12)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서 있을 자유가 있다.
필연이라는 울창한 숲에 잘 치워진 공간이 있다.
여기서 우리는 자유롭게 하나님께 응답할 수 있고, 자유롭게 하나님 형상으로 자라갈 수 있고, 자유롭게 용서의 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 그러한 공간이 주어져 있기에 우리는 거기에 설 자유가 있다.
여기에 ‘필연(必然)’은, 사람이 피할 수 없이 맞닥뜨리는
삶의 조건과 질서를 뜻합니다.
쉽게 말하면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인간은 늙고 죽는 존재라는 사실
시간의 흐름, 죄와 고통이 존재하는 현실
사회와 역사 속의 제한, 책임과 결과
인간의 연약함,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 질서
이런 것들은 우리가 마음대로 없앨 수 없는 “필연적인 현실”입니다.
마치 “울창한 숲”처럼 인간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저자는 그리스도인은 그 필연의 숲 전체를 없애는 사람이 아니라, 그 숲 속에서도 하나님 안에서 ‘설 수 있는 공간’,
곧 자유의 자리를 발견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완전히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라 여러 필연 속에 살아가지만, 그리스도 안에서는 그 필연에 삼켜지지 않고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설 자유를 얻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진리 위에 굳게 설 자유를 가집니다.
외부의 압력과 유혹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삶을 의미합니다. 자유는 흔들림 없는 정체성과 확신입니다.
12. 사랑할 자유(갈5:13-21)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로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갈5:13-15)
사랑은 자유의 가장 완성된 형태입니다.
우리는 억지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타인을 사랑할 자유를 가집니다.
자유는 자기중심이 아니라 타인을 향한 헌신입니다.
인간에게 사랑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동시에 매우 위험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우리를 안전한 자리에서 끌어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상처받을 가능성도 적고, 자기 세계를 지키며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짜 사랑은 자신을 열어야 하고, 상대를 받아들여야 하며, 희생해야 하고, 거절과 아픔을 감수해야 합니다.
참된 자유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자유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관계에는 언제나 위험이 따릅니다.
부모의 사랑에는 염려와 눈물이 따르고,
부부의 사랑에는 인내와 용서가 필요하며,
교회의 사랑에는 상처와 화해가 함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필수적이지만 위험한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그 위험 때문에 사랑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먼저 그런 사랑을 우리에게 보이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사랑의 가장 큰 위험과 희생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사랑할 자유”란:
상처받지 않을 자유가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 자신을 내어줄 자유,
두려움 때문에 닫히지 않는 자유,
하나님 안에서 다시 사랑할 용기를 얻는 자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사랑은 인간을 가장 아프게 할 수도 있지만,
사랑 없이 인간은 참되게 살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13. 창조할 자유(갈5:22-6;5)
창조할 자유는 인간이 하나님 안에서 받은 창조적 사명을 다루는 내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창조”는 단순히 예술 활동만 뜻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훨씬 넓은 의미입니다.
삶을 세워 가는 것
관계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
질서를 회복하는 것
선한 일을 만들어 내는 것
하나님 뜻에 따라 세상을 가꾸는 것
죽이는 사람이 아니라 살리는 사람이 되는 것
이 모든 것이 “창조할 자유”에 포함됩니다.
저자는 인간을 단순 소비자나 생존자로 보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존재이기에, 하나님처럼 “만들고 세우고 돌보는 일”에 참여하도록 부름받았다고 봅니다.
성경적으로는 창세기 1장의 사상과 연결됩니다.
하나님은 혼돈 가운데 질서를 세우시고, 생명을 창조하시고, 세상을 보시며 “좋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
“다스리라”
“경작하며 지키라” 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즉 인간은 파괴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이어 가는 청지기입니다.
그런데 죄는 인간의 창조성을 왜곡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세우기보다 무너뜨리고,
살리기보다 소비하고, 아름다움보다 욕망을 만들며,
공동체보다 자기 영광을 추구하게 됩니다.
그래서 참된 “창조할 자유”는 내 욕망을 마음껏 펼치는 자유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 뜻 안에서, 생명을 살리고, 선과 아름다움을 이루며, 이웃에게 유익을 주는 자유입니다.
예를 들어보면
부모가 자녀의 삶을 세워 주는 것,
목회자가 공동체를 세워 가는 것,
성도가 교회를 화평하게 만드는 것,
직장에서 정직한 문화를 만드는 것,
한 사람을 위로하고 회복시키는 것
이 모두가 창조적 삶입니다.
그래서 “창조할 자유”는 무(無)에서 무엇을 만들어 내는 하나님의 절대적 창조와는 다르지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세상을 더 하나님답게 가꾸어 가는 자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의 흐름으로 보면, 성령 안에서 사는 사람은 육체의 욕망으로 파괴하지 않고, 성령의 열매로 공동체를 세워 갑니다.
그런 의미에서 창조할 자유는, 하나님과 함께 세상을 살리고 세워 가는 자유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은 창조하는 존재입니다.
예술, 일, 관계 등에서 창조성이 나타납니다.
자유는 소비가 아니라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입니다.
14. 나누어 줄 자유(갈6:6-10)
나누어 줄 자유는, 그리스도인이 받은 자유가 자기 자신만을 위한 소유와 축적에 머무르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흘러가게 되는 삶을 뜻합니다.
세상은 보통 자유를, 더 많이 가지는 것,
더 많이 누리는 것,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복음 안의 자유는 반대 방향으로 갑니다.
참된 자유는 움켜쥐는 자유가 아니라,
나누는 자유이며, 독점하는 자유가 아니라,
흘려보내는 자유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죄 가운데 있을 때 오히려 두려움 때문에 붙잡기 때문입니다. 잃을까 두렵고, 부족할까 염려하며,
미래가 불안하니 쌓아 두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 자유한 사람은 자신의 생명이 하나님께 있음을 믿기에, 지나치게 붙들리지 않고, 기꺼이 나누며 살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물질을 나누었고,
음식을 함께 먹었으며, 가난한 자를 돌보았습니다.
그것은 억지 의무 이전에, 복음이 만든 자유의 결과였습니다.
자유는 자기중심으로 흐르면 방종이 되지만, 사랑으로 흐르면 섬김이 됩니다.
저자가 말하는 “나누어 줄 자유”에는 단지 돈만 포함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시간도 나눌 수 있고, 관심도 나눌 수 있으며,
용서도 나눌 수 있고, 말씀과 위로도 나눌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자신의 자리, 경험, 눈물, 기도까지 나누게 됩니다. 이것이 복음적 자유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가장 큰 본이 되셨습니다.
하늘의 영광을 비우시고,
생명을 내어주시고,
사랑을 아낌없이 나누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보다, “얼마나 기꺼이 나누는가”로 드러납니다.
결국 나누어 줄 자유란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내 안에 갇히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흘러가도록 살아가는 자유입니다.
15.죽을 자유(갈6:11-18)
본장은 매우 깊고도 복음적인 주제를 다룹니다.
보통 사람에게 죽음은, 가장 큰 두려움이며, 피하고 싶은 것이고, 인간 자유의 끝처럼 느껴집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마지막 한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죽음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봅니다.
저자가 말하는 “죽을 자유”는 “마음대로 죽을 권리” 같은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히지 않는 자유,
자기 생명에 집착하지 않는 자유,
하나님께 자기 삶을 맡길 수 있는 자유를 뜻합니다.
성경에서 죄는 인간을 죽음의 두려움 아래 묶어 둡니다.
히브리서에서는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은 죽음이 두려우니 더 움켜쥐고, 더 소유하려 하고,
자기 자신을 지키는 데 집착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은 죽음의 절대 권세를 깨뜨렸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죽음을 끝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가는 길, 완성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날마다, 자기 욕심에 대하여 죽고,
교만에 대하여 죽고, 자기중심성에 대하여 죽으며,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즉 복음 안의 자유는 “내 마음대로 사는 자유”가 아니라, “자기를 내려놓을 자유”입니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성경은 바로 그때 인간이 가장 자유로워진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세상 권세에 쉽게 굴복하지 않고, 자기 보존만 위해 살지 않으며,
하나님 뜻을 따라 담대히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순교자들이 그 예입니다. 그들은 죽음을 사랑한 사람들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죽음보다 더 사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결국 “죽을 자유”란:
죽음의 공포에 지배당하지 않고, 삶과 죽음을 모두 하나님께 맡기며, 그리스도 안에서 담대히 살아가는 자유입니다.
죽음조차도 두려움이 아닌 하나님께 맡기는 신앙의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자유는 생명뿐 아니라 죽음까지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입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유를 다음과 같이 재정의합니다 <자유는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니다
자유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능력이다
자유는 사랑과 책임, 순종으로 완성된다>
자유의 15장은 각각 다른 주제를 다루지만,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은 하나입니다:
“참된 자유는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을 향해 살아가는 삶이다.
꼭 한번 읽으시면서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참된 자유를 회복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긴 글 읽어주혀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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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지 | 베사모 모임 안내 | 김근택 | 2022-06-08 | 389 | |
| 공지 | 신앙도서 독서모임(베사모) 초청의 글 | 김근택 | 2022-03-05 | 352 | |
| 공지 | 베뢰아 사람들의 모임(신앙도서 독서모임)을 소개합니다. | 박민하 | 2022-02-25 | 399 | |
| 105 | 도서소개:자 유 | 김근택 | 2026-05-11 | 27 | |
| 104 |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 165 | 고중원 | 2026-05-05 | 31 | |
| 103 | 인생이란 무엇인가? 1 | 서미란 | 2026-04-22 | 53 | |
| 102 | 도둑의 아들 742 | 서미란 | 2026-04-19 | 52 | |
| 101 | 도서소개:부활의 자리로 1 | 김근택 | 2026-04-15 | 50 | |
| 100 | 도서소개:신앙은 가난을 극복할 수 있는가 2 | 김근택 | 2026-04-03 | 57 | |
| 99 | 당구 점수기록원의 수기 1 | 서미란 | 2026-04-03 | 63 | |
| 98 | <사람에게는 얼마만한 땅이 필요한가를 읽고> (톨스토이) 2 | 김윤의 | 2026-03-14 | 66 | |
| 97 | 도서소개:습관이 영성이다 | 김근택 | 2026-03-04 | 72 | |
| 96 | 도서소개:결혼에 관하여 | 김근택 | 2026-02-06 | 94 | |
| 95 | 도서소개:고통이라는 선물 1 | 김근택 | 2026-01-29 | 85 | |
| 94 | 도서소개:팀 켈러의 기도 | 김근택 | 2025-12-18 | 108 | |
| 93 | 도서소개:죽음에 관하여 | 김근택 | 2025-10-22 | 158 | |
| 92 | 도서소개: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김근택 | 2025-10-07 | 136 | |
| 91 | 타인의 감정이 나를 지배하지 않도록 | 전옥진 | 2025-08-25 | 1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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