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도서 독서모임
저자:마이클 호튼
저자소개
미국을 대표하는 탁월한 개혁주의 신학자이면서
다양한 작품을 쓴 저술가이다.
바이올라 대학(B.A)과 웨스트민스터 신학교(M.A)를 거쳐 옥스포드 위클리프 홀과 코벤트리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현재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변증학과 조직신학을 가르치며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목 차
Part 1 혁신과 불만족
1.새로운 혁신
2.평범한 것은 이류가 아니다.
3.젊고 불안정한 세대
4.또 다른 위대한 역사
5.야심:악덕이 미덕으로 변한다.
6.전하는 것 실천하기:'슈퍼 사도'는 필요없다.
Part2 평범과 만족
7.만 족
8.또 다른 영웅은 필요 없다.
9.하나님의 생태계
10.꿈만 꾸지 말고 이웃을 사랑하라
11.평범함이 지나간 이후: 우리가 기대하는 혁신
이 책은 절판되어 구입할 수 가 없습니다.
저도 강민수전도사님에게 책을 빌려서 읽고 있는데 꼭 도서 내용을 소개하고 싶어 자세하게 써야겠다는 생각이 있어 우선 'Part1 혁신과 불만족'을 소개하고 'Part2평범과 만족'은 다음 기회에 소개하고자 합니다.
Part 1 혁신과 불만족
Chapter 1
새로운 혁신
우리는 모두 특별한 인생을 원한다.
우리는 우리의 발자취와 유산을 남기고 싶어하며, 영향력있는 삶을 살고 싶어한다. 우리는 관리와 평가와 유지가 가능한 삶, '페이스북 프로필'에 걸맞는 삶을 원한다. 이런 삶은 일종의 현대판 행위 구원에 해당한다.
오늘날 '또 다른 위대한 역사'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만연한 현실을 볼 때, 기독교 안에서도 최상의 것을 추구하는 분위기가 팽배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언제나 당시에 유행하는 명분을 내세워 우리도 거기에 발맞추어 한다고 스스로를 정당화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교회의 삶이 지나치게 평범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삶의 다른 영역들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안에서의 성장(개인적 차원이든 교회적 차원이든)도 눈에 보이는 결과를 낳도록 미리 계획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게 되었다.(물론 그런 결과는 비현실적일 뿐 아니라 심지어 비성경적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평범한 은혜의 수단을 통해 놀라운 선물을 풍성하게 베풀어 주신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또한 우리와 똑같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평범한 인간들을 통해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를 세상에 보내 평범한 일을 하게 하심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기게 하신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저자는 실패보다도 지루한 것이 훨씬 더 두렵다고 합니다. 평범한 일을 하면서 평범한 사람들과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내 인생의 멋진 꿈을 좇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고 한다. 우리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우리를 거드는 조연으로 만들고 자기는 주연을 할려고 한다.
삶에 만족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에서 비롯한 상황을 기꺼이 수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매주 갑갑할 정도로 평범한 죄인이자 성도로서 평범한 성찬의 자리에 함께 모인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그런 우리와 함께하신다.
인생에서 가장 풍요로운 일들은 사진에 담을 만한 특별한 순간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몸인 가시적인 교회 안에서 삼위일체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오늘날 교회는 기대치를 높히고 예산을 늘리며, 대다수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혁신적인 요구를 제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잘아다시피 일등석에 타는 사람도 있고, 이등석에 타는 사람도 있다. 진정으로 성령 충만한 사람들, 전도도 잘하고 사회도 변화시키는, 늘 승리하며 살아가는 용사같은 신자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그저 평범한 신자일 뿐이다.
저자는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섬기며 제자로서 헌신하는 목회자와 장로와 집사들, 사랑을 주고 받는 평범한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배우자와 부모들, 그리고 이 세상에서 바로 눈 앞에 있는 이웃을 날마다 사랑으로 섬기는 평범한 소명이 가장 기본적인 하나님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신자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고 한다.
Chapter 2. 평범한 것은 이류가 아니다.
평범한것을 받아들이라는 말은 언뜻 성경적인 것 처럼 들리지만, 실상 열등한 것에 안주하라는 것, 곧 꿈을 포기하라는 말밖에 더 되겠는가?
그러나 저자는 평범한 것은 이류가 아니라고 답한다. 이는 오히려 은혜 안에서 더욱 성장하려는 습관을 독려하고 좀 더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며 평생 다른 사람들을 사랑으로 섬기려는 꿈을
꾸준히 유지하도록 돕고 싶을 뿐이라고 한다.
탁월함이라는 개념의 왜곡
삶의 어떤 영역에서든 탁월함에 이르는 지름길은 없다. 변화를 일으키는 힘은 평범한 일을 꾸준히 실천해 나가는 태도에서 나온다.
탁월함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이웃을 유익하게 하려는 목표 아래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 시간과 노력과 재능을 투자하도록 요구한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우리를 위한 것이다.'라고 믿는 순간, 탁월함이 왜곡되기 시작한다.
저자는 실력이 부족한 농구 선수일지라도 경기에서 자신의 실력이 아니라 경기 전반에 초점을 맞춘다면 좀 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교회와 결혼 생활과 우리 인생에서 교리 문제보다는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 때문에 더 큰 위기에 처할 때가 많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은 성령께서 복음을 통해 허락하시는 믿음의 열매인데, 역설적
이게도 비범함과 혁신을 추구하다가 그런 열매를 뿌리째 잘라 버릴 수 있다.
종종 이런 자질들이 그리스도와 연합한 데서 나온 결과가 아니라, 양과 염소, 또는 상급을 받는 양과 그렇지 못한 양을 구분하는 잣대로 간주되곤 한다. 우리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않는 선한 목자이신 주님과 달리 사람들을 너무나 쉽게 저버린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소명의 대상과 목적에 걸맞는 판단 기준에 따라 그에 합당한 탁월함을 지향해야 한다.
'평범하다'는 것은 이기적인 동기로 탁월함을 추구하는 우상 숭배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행동하는 믿음
성경은 행동하는 믿음을 요구한다.
'평범하다'는 것은 '수동적'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모든 신자는 자신이 믿는 것을 실천해야 한다. 그러나 무분별한 행동주의는 우리 자신을 엉망진창으로 만든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어떤 종류의 행동이 필요한가? 왜, 무슨 목적으로 그렇게 행동해야 하는가?'하는 것이다. 인생에서 만나는 시련과 기쁨 속에서 맹목적인 행동주의와 신실한 실천은 매우 다르게 나타난다.
그러나 실천하라는 요구를 복음과 혼돈해서는 안 된다. 행위가 곧 복음이라면, 교회 역시 복음전도라는 명목으로 세상과 결탁하여 우리를 더욱 자기중심적으로 몰아가는 잘못을 저지르고 말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의롭다하심을 받을 뿐 아니라 거룩하게 변화된다. 이 두 단계는 서로 구별될 뿐, 분리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구원얻는 믿음이 선행의 유일한 원천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선행을 필요로 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우리의 선행을 필요로 하는 다른 신자들을 우리에게 허락하신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다른 신자들을 사랑함으로써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 선행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위한 조건이 아니라 그 열매이다.
Chapter 3. 젊고 불안정한 세대
젊은이들이 교회가 자신들의 비위를 맞춰 주기를 바라는 것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현상은 교회가 그런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한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교회의 직분자를 비롯해 지혜와 연륜을 갖춘 나이 든 사람들이 그런 일을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그들은 젊은이들을 보살피면서,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책임과 특권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과 행동을 통해 가르쳤다.
젊음은 불안하다.
어느 시대이든 어린 시절은 산만하고, 호기심과 경이감이 많다는 특성을 띤다. 이런 특성은 때로 많은 불편을 초래하지만 악덕으로 간주되지는 않는다.
어린아이는 진리를 깊이 묵상하기는커녕 올바르게 되새길 줄도 모른다. 어린아는 신뢰감이 강하여, 그만큼 쉽게 속아 넘어간다. 어린아이는 성급하다. 그것이 어린아이의 특성이며,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이다.
성장
우리는 성장하면서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대한 책임을 짊어지기 시작한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안에 감추어진 생명을 발견했기 때문에 더 이상 우주의 중심이 아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을 향해 계속 나아간다. 바울은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빌3:12)고 말한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를 반복한다면, 유아 수준에 머물 수 밖에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아는 구원의 지식을 힘써 추구해야 한다.
젊다는 것은 불안정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성장하면서 하나님 말씀을 배우고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능력을 가지게 된다.
성장은 불안정한 상태에서 벗어나 훈련을 통해 성숙한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을 가리킨다.
성장하지 못하면 배교할 위험성이 커진다(히6:1-12 참고)
젊은이들은 특히 자기만족에 치우치기 쉬운 성향이 있기 때문에, 목회자와 장로들 앞에서 책임 있게 행동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안타깝게도 요즘처럼 경박한 사회에서는 나이 든 어른들조차도 신중한 덕성을 외면하는 경향이 날로 커지고 있다. 한때는 성급하게 주장을 내새우기 전에 깊이 생각하라는 나이 든 어른들의 충고가 사회적으로 상당히 강한 여향력을 발휘했다.
오늘날 교회가 좋은 본보기를 통해 다시금 그런 성숙한 태도를 권장하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세대와 우리의 세대
기독교 신앙은 자손 대대로 전승되는 특성을 띤다. 왜냐하면 비록 사람들이 불순종할지라도 하나님은 대대로 언약에 신실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특정한 세대에만 적용되는 의식과 신앙 체계를 확립는 것이 아니라 자손 대대로 언약을 계승하기 위해 관심을 기울렸다.
하나님의 은혜 언약은 세대뿐 아니라 민족까지도 하나로 연합시킨다.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계5:9) 온 사람들이 은혜 언약을 통해 어린양의 보좌 주위에 모여든다.
향락주의의 역설
순간적이고도 즉각적인 경험을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과 이기적인 야심의 배후에는 끔찍한 허무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어디서 생겨나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사라지는 동안, 그 중간 어디엔가 유성처럼 크게 한번 빛을 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순간이 흥분의 도가니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울은"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고전15:32)라는 헬라 희극 대사를 인용하기도 했다. 이런 경향을 '나르시시즘'(Narcissism)이라고 한다.
새롭고 큰 경험을 추구하려는 욕구, 곧 만족할 줄 모르고 의미를 찾으려는 욕망을 채우고 싶어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 어떤 행동이나 탁월함과 마찬가지로 행복도 가치있는 대상이 있어야 한다.
전도서에서 가르치는 대로, 행복 자체를 목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헛되다.
철학자들은 이를 "향략주의 역설"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향락을 추구하면서도 실제로는 기쁨을 쫓아내기 때문이다. 행복도 행복 자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관심을 기울일 때 비로소 찾아온다. 의미와 만족과 목적은 열심히 찾는다고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자체가 아니라 다른 것을 찾을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다.
자율성과 공동체
자율성을 요구하고 고정된 신념과 규범과 가치를 거부하며, 모든 것을 자기 방식대로 처리하고 싶어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공동체와 소속감을 원한다. 그러나 그 두 가지를 모두 취할 수는 없다. 공동체가 세워지려면, 각 개인이 서로에 대해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공동체가 성립하려면, 서로의 합의, 즉 공동체를 규정하는 요소들에 관한 기본적인 협약이 이루어져야 한다. 공동체에 소속되려면, 먼저 거기에 합의해야 한다.
Chapter 4. 또 다른 위대한 역사
각 세대는 새롭게 개발된 놀라운 것에 매료되어 기존의 것을 모두 없애고 새롭게 시작하려 한다.
그러고는 다음세대가 그들의 세상을 새로 건설할 때까지만 그 명맥을 유지한다. 이것은 여자에게서 난 모든 사람이 기존의 것을 혁파하려는 성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계속 개혁만을 시도하다 보면, 문화든 교회든 오래이어지는 유산을 남길 수 없다.
현재의 것은 이전의 것으로부터 자연스레 흘러나온다. 결국 새로운 세대는 언제나 '또 다른 위대한 역사"를 부른다. 제도는 대게 나이 든 사람들 중심으로 운영되고, 사회 운동은 주로 젊은이들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종족이나 사회, 경제적인 배경, 세대가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인 교회의 경우에는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엡4:3)것이 특별히 큰 과제로 부각된다.
우리의 문화는 "또 다른 위대한 역사"에 관심을 집중하지만 성경은 대대로 전해져 오는 은혜 언약을 증언한다. 물속에 던진 낚싯대를 연신 들었다 놨다 하거나 나무를 계속 옮겨 심거나 쉴 새 없이 온도를 재거나 관심과 전략의 초점을 매 시간 조정할 필요가 없다. 왕이신 주님으로 하여금 왕국을 이끄시게 하고, 우리는 그분의 제자가 되어 그분의 명령을 따르며, 또한 사람들을 그분의 제자로 삼아야 한다.
회심과 언약 안에서의 양육
우리는 신앙생활이 극적인 경험에만 근거한다면, 그런 경험을 끊임없이 추구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성장 곡선이 서서히 증가하기보다는 단번에 정점에 이르기를 원하기 때문에 늘 "또 다른 위대한 역사"를 찾는다.
교회의 사명은 하나님의 약속을 교회 안팎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선포하고 적용하는 것이다.
사도행전은 서로 다른 두 가지 사역(성인의 회심 사역과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한 사역)을 구분하지 않는다. 복음전도는 특별 집회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복음 전도는 항상,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복음을 전도하려면, 설교와 세례뿐 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명령하고 가르치신 모든 것을 전달하는 사역이 필요하다(마28:18-20 참고) 이것은 비범한 사역이 아니라 교회의 평범한 사역을 통해 이루어진다.
종교개혁자들은(루터의 회심과 같은)극적인 회심을 인정했지만, 대개 회심을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회개가 더욱 깊어지면서 평생토록 꾸준히 성장해 가는 과정으로 간주했디.
오늘날 교회의 상태는 어떠한가?
평범한 것을 싫어하는 베이비붐 세대를 가르켜 "평범한 것을 받아들일 능력이 없는" 세대라고 묘사한 조 퀴난(미국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의 말은 매우 적절하다. 이 말은 교회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오늘 교회의 예배 어땠어?
과거에는 대부분의 교회에서 이런 질문을 듣는 일이 거의 없었을 것이다. 뭔가 또 다른 특별한 예배가 되었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평범한 주일에 평범한 교회에서 평범한 수단을 사용하여 평범하게 예배한다고 하여 그때 일어나는 일 자체도 평범한 것은 아니다. 예배 가운데 일어나는 일은 진정 놀랍기 그지없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신다. 더욱이 하나님께서 친히 심판과 칭의를 베푸시고, 성령과 말씀을 통해 죄인들을 감화시키며, 자신의 양떼를 불러 모으신다. 하나님은 그들을 그리스도와 연합시키시고 그들을 정결하게 하고 먹이시며,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동안 가르치고 보살핀다.
이거보다 특별한 것이 무엇일까?
Chapter5.야심:악덕이 미덕으로 변하다.
이범 장의 제목은 야심이 악덕이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누군가에게 야심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칭찬이었지만, 지금은 모욕으로 간주된다. 과연 야심은 악덕일까? 야심이 어떻게 악덕일 수 있을까?
만일 야심이 목적을 세우고 이루려는 의욕을 의미한다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우리에게 그보다 더 어울리는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담은 아내와 후손을 감사하는 삶을 살도록 이끌지 못하고 왕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그의 야심은 자기주장과 경쟁의식을 유발했다. 그런 관계는 아담과 하와 사이에서 처음 시작되었고 나중에 가인과 아벨로 이어졌으며, 이후 인류의 역사로 전달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해결책을 마련하셨다.
때가 이르자 성부는 성자를 세상에 보내셨다.
첫째 아담은 창조 질서를 파괴하고 하나님의 보좌를 빼앗으려고 했지만, 본질상 하나님이신 마지막 아담은 보좌를 버리고 우리의 불행에 참여하셨다.(빌2:6-10참고)
첫째 아담은 "꼭대기에서 만나자"라는 철학을 제시했고,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을 향해 "밑바닥에서 만나자"라고 말씀하셨다.
삶과 업적을 향해 열정과 멋진 목표를 이루려는 욕망은 본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이다. 그런데 타락한 이후 욕망의 방향이 바뀌어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의 유익이라는 올바른 목표에서 벗어나 자아게게 집중되었다. 그리하여 우리의 거룩한 열정이 악(우상 숭배, 양심을 버림, 성적 부도덕)하게 변질되었다.
"시기와 이기적인 야심이 있으면 무질서와 온갖 악한 행위가 나타날 것이다"(약3:13-18)라고 말한다. 야심은 교회 안에 무질서를 조장한다.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으로 섬기신 것을 기억하여 겸손과 화합을 추구하여야 한다.((빌2:3,4)
"또 너희에게 명한 것같이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이는 외인에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 또한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살전4:11-12)
바울은 우리에게 해야 할 일을 기억하고 평범한 소명에 충실하려는 야심, 곧 경건한 열망을 가지라고 권고하고 있다.
성경의 가르침에 따르면, 야심은 어리석다. 왜냐하면 그것이 경건한 열정이라는 하나님의 선물을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바꾸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섭리를 통해 우리 각자에게 특정한 은사와 성향과 재능과 기회를 허락하셨다. 우리는 무한하지 않다. 우리는 원하는 바를 무엇이든 다 이룰 수 없고, 원하는 대로 다 될 수도 없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유익하게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은사와 기회는 개인의 행복만이 아니라 공공의 행복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
사회 안에서 이루려는 모든 종류의 직업적 소명은 공공의 행복에 기여한다.. 교회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새끼손가락이 아프면 온몸이 고통스럽다. 그러나 만인제사장설은 모든 신자가 교회에서 특별한 직분을 수행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몸이 온전히 조화롭게 성장하려면 언제나 적절한 질서가 필요하며, 자기 책임을 감당해야 조화롭게 성장할 수 있다.
Chapter6.전하는 것 실천하기:슈퍼 사도는 필요없다.
저자는 교회를 민주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은 하나님과 메시야에 대한 반역이라고 말한다.
미국의 식민지 주민들은 독립을 선언하고 쟁취했다. 그리고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국가의 통치 체제를 확립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그분의 형상을 지닌 의존자로 창조하셨고, 단독적으로 우리를 죽음과 지옥에서 구원하셨다.
따라서 거룩한 백성을 통치하는 체제를 결정할 권리도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고 한다.
바울과 "슈퍼 사도들"
사도 시대에도 제각기 자신이 좋아하는 스승을 중심으로 파당을 지으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근본 교리를 둘러싸고 이견과 다툼이 일어나는 것은 불행함 일이지만, 때로는 그럼 일이 필요하다.(고전11:19참고)
예나 지금이나 야심적인 사람들은 공동체를 가장 크게 분열시키는 주범이다. 그들은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을 만들 수만 있다면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화합을 깨뜨린다.(롬16:17; 고전1:10; 딛3:10; 유1:19 참고)
바울이 개척한 교회들에서도 그런 문제가 발생했다. 처음에 그가 전한 복음을 기쁘게 받아들었던 사람들 중 몇몇이 단순한 진리에 싫증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더 깊은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결과 "슈퍼 사도(지극히 크다는 사도들)가 등장했다.
달변가인 그들은 사도들, 특히 바을 사도가 가르친 것보다 훨씬 더 위대한 비밀을 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바울을 보라! 약하고 볼품없다. 말도 어눌하다. 그는 하나님의 사자처람 보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달콤한 말로 복음의 단순한 진리를 외면하게 만들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사명, 곧 복음 전파를 단념하지 않았다.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을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나는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 줄로 생각하노라. 내가 비록 말에는 부족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이것을 우리가 모든 사람 가운데서 모든 일로 너희에게 나타내었노라"(고후11:4-6)
"나는 내가 해 온 그대로 앞으로도 하리니 기회를 찾는 자들이 그 자랑하는 일로 우리와 같이 인정받으려는 그 기회를 끊으려 함이라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고후11:12,13)
바울은 고린도 신자들에게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 받는 자가 되라"(고전11:1)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바울처럼 우리가 우러러보아야 할 진정한 위인들은 처음부터 영웅이 되려는 야심을 품지 않았다. 바울은 사도들이 교회를 세우시는 그리스도의 증인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막중한 사역을 감당해야 할 직분을 맡은 자들을 존경하고 공경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들의 인격이나 재능이 아니라, 그들의 충실한 믿음의 결말과 그들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긴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곧 'Part2 평범과 만족'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번호 | 제목 | 작성자 | 등록일 | 조회수 | 첨부 파일 |
---|---|---|---|---|---|
공지 | 베.사.모 활동을 위한 < 신앙도서 목록 > 을 공유합니다. (업데이트 : 2025.04.05) | 열린비전교회 | 2025-04-05 | 58 | |
공지 | 신앙도서 독서모임(베사모) 4기 회원을 모집하면서 | 김근택 | 2025-01-01 | 106 | |
공지 | 신앙도서 독서모임(베사모) 3기 회원을 모집하면서 1 | 김근택 | 2024-01-08 | 166 | |
공지 | 신앙도서 독서모임(베사모) 2기 회원을 모집하면서 | 김근택 | 2023-02-24 | 205 | |
공지 | 베뢰아 사람들의 모임(신앙도서 독서모임) 2기 신입회원을 모집합니다. | 박민하 | 2023-02-24 | 179 | |
공지 | 베사모 모임 안내 | 김근택 | 2022-06-08 | 217 | |
공지 | 신앙도서 독서모임(베사모) 초청의 글 | 김근택 | 2022-03-05 | 207 | |
공지 | 베뢰아 사람들의 모임(신앙도서 독서모임)을 소개합니다. | 박민하 | 2022-02-25 | 236 | |
86 | 도서소개: 오디너리 | 김근택 | 2025-07-14 | 2 | |
85 | 하나님이 가라사대 "쉬면서 하거라" 1 | 고동환 | 2025-07-13 | 3 | |
84 | 독서감상:기도는 거룩한 고민입니다 1 | 이원자 | 2025-07-06 | 6 | |
83 | 도서소개: 기독교란 무엇인가 1 | 김근택 | 2025-06-25 | 24 | |
82 | 도서소개: 당신, 크리스천 맞아? | 김근택 | 2025-06-09 | 32 | |
81 | 도서소개:부정적인 자아상을 극복하기 위한 내가 누구인지 이제 알았습니다. | 김근택 | 2025-05-21 | 43 | |
80 | 도서소개: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 김근택 | 2025-05-02 | 58 | |
79 | 파키스탄, 나의 사랑 by 전재옥 1 | 고동환 | 2025-04-18 | 54 | |
78 | 하나님을 아는 지식 | 김근택 | 2025-03-31 | 74 | |
77 | 도서소개: 그리스도인의 자존심 | 김근택 | 2025-03-18 | 69 | |
76 | 도서소개:책 읽는 방법을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 1 | 김근택 | 2025-02-05 | 97 | |
75 | 도서소개: 열혈 독서 1 | 김근택 | 2025-01-25 | 93 | |
74 | 도서소개: 겸손 1 | 김근택 | 2024-12-07 | 101 | |
73 | 도서소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100세 노인 1 | 김근택 | 2024-11-20 | 101 | |
72 | 도서소개: 이것이 예배이다. | 김근택 | 2024-11-08 | 9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