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도서 독서모임

하나님을 아는 지식
2025-03-31 12:51:31
김근택
조회수   6

저자:제임스 패커

저자는 영국에서 출생하여 옥스퍼드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영국에서 27년 동안 교수 및 설교 사역을 했다. 이후 캐나다 밴쿠버의 리젠트 칼리지에서 역사신학 및 조직신학 교수로 가르쳤다.

저자는 복음주의 역사를 오늘에 모습으로 만들어 놓은 리더 중 한명으로, 청교도 신앙을 바탕으로 반지성적 경향들에 맞서 영성과 지성을 겸비한 복음주의 운동을 가능케 하고, 현대 복음주의의 모든 측면에서 엄밀한 신학적 사고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 준 인물이다.

1973년 대표작인 본서를 저술했는데 타임지는 저자를 교리 분야의 솔로몬이라 칭하면서 본서를 통해 여러 교파들의 연합을 이루어 냈다고 평가했다.

코럴 리지 장로교회 목회자 D. 제임스 케네디는기독교 서적 중에 현대의 고전이라는 이름을 붙일 만한 책이 있다면 패커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 이야말로 그 책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1996년도 초판 발행 이후 30여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것으로 보아도 현대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본 도서는 IVP(한국 기독학생회 출판부) 모던 클래식스 자문위원회에서 19세기 말에서 20세기까지 출판된 기독교 저작 가운데 현대의 고전이라고 할 만한 책으로 선정한 도서입니다.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가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렘6:16)
이 책은 바로 이와 같이 하도록 독자들의 손을 잡아 이끈다. 이는 새로운 길들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옛적 길로 되돌아오라는 단도직입적인 소환이다. 선한 길은 여전히 늘 있던 그 길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1부 여호와를 알라
제2부 네 하나님을 보라
제3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도서의 분량이 많이 이번에는 제1부  '여호와를 알라'를 소개하고 2부, 3부는 다음에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제1부 여호와를 알라

1.하나님에 대한 연구

이 주제는 마음을 겸손하게 해주는 한편, 또한 마음을 넓혀 줍니다. 하나님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 사람은 좁은 지상의 일만을 갖고 씨름하는 사람보다 더 넓은 마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또한 크나큰 위안이 됩니다. 그리스도를 묵상하면 모든 상처를 치유하는 치유제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명상은 모든 슬픔을 근절시켜 줍니다. 성령님 감화력 안에는 모든 아픈 곳을 잊게 해주는 진통제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슬픔을 잊고자 하십니까?
여러분의 염려를 잊고자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신성의 깊고 깊은 바다에 잠겨 보십시요. 하나님의 광대함에 몰두해 보십시요. 그러면 여러분은 안식처에서 나오는 것처럼 기운을 차리고 생기가 돌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연구를 등한시하는 것은 눈가리개를 하고서 아무런 방향 감각없이 그리고 주위에 무엇이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로 살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면 어디서 어떻게 출발해야 하는가?

다섯 개의 기본 진리, 곧 그리스도인들이 갖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의 다섯 가지 근본 원리가 우리의 행로를 처음부터 끝까지 결정할 것입니다.

1) 하나님은 인간에게 말씀하셨으며,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갖도록 하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 하나님은 그분이 지으신 세상의 주님이시며 왕이시다. 하나님은 하시는 모든 일에서 완전하심을 나타내 보이시면서 자신의 영광을 위해 모든 것을 다스리신다. 이로 인해 인간들과 천사들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미합니다.

3) 하나님은 구세주로서 믿는 자들을 죄책과 죄의 권세로부터 구하시기 위해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권적인 사랑을 적극적으로 나타내 보이신다. 그리고 자녀 삼으시고 그들에게 합당한 복을 주신다.

4) 하나님은 삼위이시다. 신성 안에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라는 세 위격이 있으며 구원 사역은 이 세 위격이 함께하시는 역사다. 곧 성부께서 구속하기로 결심하시고, 성자께서는 그 구속을 이루시며, 성령께서는 그것을 적용하신다.

5) 경건이란 하나님의 계시에 대해 신뢰와 순종, 믿음과 예배, 기도와 찬양, 복종과 섬김으로 반응하는 것을 의미한다. 삶은 하나님의 말씀 아래서 드러나고 영위되어야만 한다. 이것이 참된 종교입니다.

저자는 이 기본적인 진리들을 토대로 하나님의 본질과 성품에 대해 성경이 무엇을 보여주는가를 상세히 검토할 것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공부를 시작할 때면  '나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갖게되면 그 지식을 가지고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라고 스스로 질문해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신학적 지식 자체를 위하여 신학적 지식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우리를 교만하고 우쭐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다른 그리스도인들보다 한 단계 위에 있다고 생각하여 다른 사람들을 경멸하고 가련한 자로 치부해 버릴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그런 태도를 갖지 않도록 마음을 지켜야 하며, 그렇게 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진리와 정통 교리, 성경의 가르침과 신학에 목적으로 여기는 것보다 위대한 하나님을 바로 알고 섬김으로 삶에서 경건을 이루는 것에 목적을 두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이 일을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바꿀 수 있는가?
만만치 않지만 하나님에 대해 배운 각각의 진리를 하나님 앞에서 묵상하는 내용으로 바꾸어 하나님을 향한 기도와 찬양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요즘 그리스도인들에게 묵상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저자는 묵상의 무엇이며 묵상의 목적과 묵상의 결과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묵상이란 하나님의 사역과 道(도), 목적과 약속들에 대해 자신이 아는 것을 상기하고 숙고하고, 깊히 생각해 보고, 자신에게 적용하는 활동입니다.

묵상의 목적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정신적, 영적 시각을 밝히는 것이며 하나님의 진리가 우리 마음과 뜻에 충분하고도 적절히 영향을 끼치도록 하는 것이다. 묵상은 자신에게 하나님과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종종 자신과의 싸움, 의심과 불신의 풍조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분명하게 이해하도록 스스로를 설득하는 것이다.

묵상은 어떤 결과를 낳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영광 그리고 우리 자신의 하찮음과 죄성을 묵상함으로 겸손(謙遜)해진다.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드러난 신비로운 하나님의 자비를 묵상함으로써 격려받고 평안(平安)을 얻는다

2.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

우리는 하나님을 안다고 말합니다. 결국 복음주의자들이라면 그렇게 말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정말 아무런 망설임 없이 우리 개인사의 특정한 사건들과 관련해서 하나님을 알아왔다고 말할 수 있는가?

저자가 이 문제에 의문을 가지는 까닭은 우리 대부분이 하나님에 대해 그처럼 생생하게 체험한 적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약간의 지식이 하나님에 대한 많은 양의 지식보다 값지고 말합니다.
이 점을 살펴보기 위하여 저자는 다음 두가지 사항을 짚어보자고 합니다.

1)우리는 하나님을 많이 알지 못하면서도 하나님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신학에 대한 관심, 하나님에 대한 지식, 기독교의 주제들에 대해 명료하게 생각하고 잘 말할 수 있는 능력은 결코 하나님을 아는 것과 같지 않습니다.

2)우리는 하나님을 많이 알지 못하면서도 경건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듣는 설교, 읽는 책, 사귀는 친구에 의해 좌우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사람들에게 어떤 또 다른 영향을 미치는가?
저자는 이에 대한 대답중 가장 분명하고 주목할 만한 대답은  다니엘서에 있는 것 같다고 하면서 4가지 명제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1)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한 엄청난 열정을 갖고 있다.
다니엘서에서 예언이 나와 있는 장 가운데 하나를 예시로 말하고 있는데
"오직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용맹을 떨치리라"(단11:32)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이 도전이나 무시를 받는 한 가만히 있을 수 없다. 그들은 무엇인가를 해야만 한다고 느낀다.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당하는 것이야말로 그들로 하여금 행동을 취하게 하는 일이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리와 명예가 직접적이거나 암암리에 위태로운 지경에 빠지는 상황에 민감하여 일이 그냥 진행되도록 놓아두기보다는 개인적인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사람들이 그 문제에 관심으 갖도록 하고 그것에 대해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도록 한다는 것을 보여 줄 뿐이다. 또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변치 않은 결과는 하나님의 대의를 위해 기도하는 열정으로 표현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많아질수록 그러한 열망은 더욱 커진다. 우리는 이것으로 자신을 점검해 볼 수 있습니다.

2)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위대한 생각을 품고 있습니다.
팔레스틴을 집어삼킨 바벨론 제국의 힘과 장대함 그리고 또 다른 위대한 제국이 뒤따라 나타날 가능성, 곧 인간적인 기준으로 보면 이스라엘을 왜소하게 보기에 충분한 상황에 직면해서, 다니엘서는 이스라엘 하나님이 왕의 왕이시며 주의 주가 되신다는 사실과 '하나님이 다스림"(단4:26)을 이야기 합니다. 역사의 모든 시점에서 하나님의 손이 작용하신다는 것, 곧 그리고 결국에 가서 하나님의 나라가 승리하리라는 것을 극적으로 상기시켜 줍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에 대한 이러한 견해를 표명하는가? 우리는 이를 통해 우리가 얼마나 많이 혹은 조금 하나님을 아는가를 추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3)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한 담대함을 드러낸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위험을 자초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저돌적인 무모함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으며, 그것을 위해 치러야 할 대가를 계산했고, 닥칠 위험도 알았다.

하지만 그들은 이런 것들로 인해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께 충성하기 위해서는 결과에 관계없이 기쁘게 그 일을 행했다.

이것이 바로 다니엘과 사드락과 메삭과 아뱃느고가 가지고 있던 마음이었다. 그들은 어떤 길이 올바른가를 결정하는 일은 고민스럽고 어려움을 알지만 일단 그것에 대해 분명히 알고 나면 그것을 담대하게 주저없이 받아들인다.

우리 역시 이러한 잣대를 통하여서 우리가 하나님을 얼마나 잘 아는지를 측정해 볼 수 있다.

4)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 안에서 커다란 만족을 얻는다.
자신들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은 자신들을 안다는 확신, 이러한 관계가 죽음을 넘어서 영원토록 삶 속에서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람을 보증해 준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누리는 평화는 무었과도 비교할 수 없다고 한다.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롬5:1)라고 바울이 고백합니다.

이것이 바로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이 알았던 평화이다. 그래서 그들은 느부갓네살의 최후 통첩인 "너희가 만일 (우상에)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단3:15)하는 위험에 직면해서도 만족하면서 자기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여기에 대한 답은 단3:16-18에서 말하고 있다.
느브갓네살에게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풀무불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에게도 건져낼 것이라고 말한다. 마지막에 그렇게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왕의 신을 섬기지 않겠다고 당당히 말합니다.
결과가 어떠하든지 아무런 차이가 없다. 살든지 죽든지 그들은 만족하고 있다.

우리의 만족이 얼마나 광범위한가 하는 것 역시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을 아는가를 판단할 수 있는 또 하나니의 척도입니다.

3. 아는 것과 아신 바 되는 것

우리는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창조되었음으로 인생의 목표는 바로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 세워야 합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17:3)
예수님이 주시는 영생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인간의 상태 중에서 하나님께 가장 큰 기쁨을 드리는 상태는 바로 하나님 그 분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는 때다.
"나는....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6:6)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아는 것은 어떤 활동을 포함하는가?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에 귀기울이고 성령께서 해석해 주시는 대로 그것을 자신에게 적용하는 것. 둘째로,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이 드러나는 하나님의 본질과 특성에 주목하는 것
셋째로, 하나님의 초청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이 명하시는 일을 행하는 것.
넷째로, 하나님이 이처럼 가까이 오사 당신을 이러한 신적 교제로 이끌어들인 것에서 보이신 사랑을 인식하고 기뻐하는 것을 포함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제 한걸음 물러나서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의미하는 바에 대하여 강조점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하나님을 아는 것은 인격적인 교제이다.
하나님이 자신을 열어 보이심에 따라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 그리고 하나님이 당신을 아심으로 하나님의 교제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2)하나님을 아는 것은 인격적으로 관련되는 일이다. 곧 지성과 의지와 감정이 관련된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지적이고 의지적인 관계일 뿐 아니라 감정적인 관계이며, 만일 그렇지 않다면 실로 인격적이고 깊은 관계가 되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잊어버려서는 않된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대의가 승리하는 것과 그 과정들에 대해 감정적으로 관여하게 되며 또한 그래야 한다. 신자들은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정당함이 입증될 때 기뻐하며, 하나님이 조롱당할 때 가장 격심한 비탄을 느낀다.

3)하나님을 아는 것은 은혜이다.
그것은 반드시 또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 주도권이 있는 관계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사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의 사랑을 우리에게 알리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알도록 하셔서 우리와 사귀시는 것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자 되었거든"(갈4:9)이라고 말씀으로써 하나님을 아는 우리의 지식에는 이처럼 은혜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아신 결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은혜로 그들을 택하셨기 때문에 그들이 믿음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주도권을 가지시고 주권적인 은혜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을 안다는 사실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아신다는 사실입니다.

4.오직 참되신 하나님


십계명 중 제2계명을 보면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출20:4-5)

이는 우상 숭배가 거짓 신들을 숭배하는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형상을 가지고 참되신 하나님을 숭배하는 것도 포함된다는 것입니다.
곧 우리가 예배하는 분인 하나님에 대한 형상과 그림들이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한 보조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상당히 단호하게, 예배 때 사용하기 위해 "어떤 것이든 조금이라도 닮은 것을 만들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1)형상들은 하나님의 명예를 손상 시킨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기 때문입니다.
칼뱅은 형상의 위험에 대하여  이렇게 썼다.
'하나님의 참된 형상은 세상 속에서 발견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하나님이 눈에 보이는 형태로 제시되면, 하나님의 영광은 더럽혀지며 그분의 진리는 거짓에 의해 타락해 버리고 만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을 고안해 내는 것은 그 자체가 불경스러운 일이다. 하나님의 존엄성이 훼손되며, 하나님은 실제의 하나님이 아닌 다른 어떤 존재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문화적인 관점에서 종교 예술을 어떻게 생각하건 간에, 우리는 하나님을 그린 그림들에 의지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아서는 안 되며 그것들로 마음의 감동을 받아 예배하여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2)형상들은 우리를 그릇된 길로 인도한다. 그것들은 하나님에 대한 그릇된 개념을 전달하기 때문입니다.
형상들은 하나님을 나타내기에 부적절하며 그러기에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왜곡하며,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성품과 뜻에 대한 온갖 잘못된 생각을 심습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그림이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생각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인식하고 나면
부어 만든 형상은 물론이고 우리 마음속의 형상도 제2 계명을 어긴 것이라고 한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나님을 생각할 자유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제2계명을 어기는 것이라는 사실을 최대한 강조하여 말할 필요가 있다.
기껏해 봤자 그들은 하나님을 인간의 형상, 아마도 이상적인 인간 혹은 초인으로 생각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지만 하나님이 우리가 만든 형상 안에 존재하신다고 생각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접하게 된 계시를 통해 하나님에 대한 참된 개념을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제2계명의 적극적인 효과는, 다른 어떤 출처도 아닌 하나님 자신의 말씀인 성경으로부터 하나님에 대한 견해를 취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것입니다.

요점은 분명하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상징을 보여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다.그럼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5. 성육신하신 하나님

예수님의 성육신을 인간의 논리로 설명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예수님이 아주 훌륭하고 경건한 인간에 불과하다면,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에 대해 말해 주는 바를 믿는 일은 정말로 엄청나게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만일 예수님이 영원하신 말씀이며, 창조 시에 성부의 집행자가 되셔서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신"(히1:2) 바로 그분이라면,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고, 이 세상 안에서 사시고, 이 세상에서 떠나시는 중에, 창조의 능력을 보여주는 일련의 행위를 행하셨다 해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일단 예수님을 신적 존재로 인정한다면, 모든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이 땅에 태어나신  그 아이의 신원에 대하여 성경은 두 가지 사항을 말해준다.

1)베들레헴에서 태어난 그 아이는 하나님이었다.
좀더 정확하게 성경 용어를 사용해서 말하면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혹은 성자 하나님이셨다.

그 분은 한 아들(a sun)이 아니라, 그 아들(the sun)이셨다. 요한은 독자들이 예수님의 독특성을 이해하는데 분명하게 확인하기 위해 그가 쓴 복음서의 처음 세 장에서 네 번이나 그분이 하나님의 독생자(only begtten or one and only  Son of God)라고 말한다.(요1:14, 18/ 3:16,18) 이에 따라서 교회는 "...하나님 아버지를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라고 고백합니다.

2)베들레헴에서 태어난 그 아기는 인간이 되신 하나님이다.
말씀이 육신, 곧 진짜 인간 아기가 되셨다. 그러나 그 분이 더 이상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은 아니다. 그분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셨다.

하지만 이제 또한 인간이 되셨다. 그분은 하나님에서 신성의 어떤 요소를 뺀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인성을 취하심으로 인성까지도 자신의 것으로 만드신, 모든 것을 더한 분이었다.

우리는 성육신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신약성경은 우리에게, 성육신이 제기하는 물리적, 심리적 문제들에 대해 생각하느라 고심할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하나님께 경배하라고 권한다.

바울은 빌립보서 2장에서 이렇게 쓴다.
"본질상 언제나 하나님이셨던 그분은, 하나님과 동등한 분으로서의 자신의 특권에 집착하지 않고, 본질상 종이 되기로 하고 인간으로 태어나심으로써 스스로 모든 유리한 점을 버리셨다.
그리고 명백하게 인간으로 나타나셔서, 죽음에 이를 정도까지 순종하는 삶을 사심으로 자신을 낮추셨다.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6-8)
그리고 이 모든 일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제 하나님의 아들이 자기를 비워 가난하게 되셨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살펴보자.

그것은 영광을 버린 것, 권능을 자발적으로 억제한 것, 역경과 고립과 학대와 악의와 오해를 받아들이는 것,,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압도될 정도의 고뇌를(육체적인 것보다는 영적인 것이 더욱 큼)포함하는 죽음 등을 의미했다.

그것은 그분의 가난함을 통해 인간이 부요해지도록 하기 위해, 사랑스럽지 못한 인간을 최대한 사랑하셨다는 뜻이다.

6. 그가 증언하실 것이요

요한은 삼위일체의 신비에 대해 주님이 드러내신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삼위일체는 곧 세 위격이며 한 분이신 하나님으로, 성자는 성부의 뜻을 행하고 성령은 성부와 성자의 뜻을 행한다.
그리고 여기서 강조되는 점은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기 위해"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오시는(요14:16) 성령으 그리스도 대신 보혜사의 사역을 하러 오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보혜사 그리스도의 사역이 중요했다면, 보혜사 성령의 사역이 그보다 덜 중요할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 하신 사역이 교회에 중요했다면, 성령께서 하시는 사역 역시 중요해야 한다.

다음과 같은 일련의 관계에 대해 알게 된다.
1)성자는 성부께 복종한다. 그래서 성자는 그분의(성부의)이름으로 보냄을 받는다.
2)성령은 성부께 복종하신다. 그래서 성령은 성자의 이름으로 성부에 의해 보냄을 받는다.
3)성령은 성부뿐 아니라 성자에게도 복종하신다. 그래서 성령은 성부뿐 아니라 성자에 의해서도 보냄을 받는다.

저자는 성령이 신적 존재이지만 무시된 분이라고 말하고 있다. 성령론은 기독교 교리에서 재 속에 묻힌 보석과 같으며 거기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드물다고 한다.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여노라"(행19:2)
사실상 바울이 예배소에서 만났던 제자들과 똑같은 처지에 있다.

그리스도에 대해 그처럼 관심이 많다고 공언하는 사람들이 성령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고 합니다.

성령의 사역은 정멀로 중요한가?
중요하다. 성령의 사역이 없다면 세상에는 복음도 믿음도 교회도 기독교도 전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성령이 없으면 복음도 신약 성경도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을 떠나실 때, 제자들에게 자신의 임무를 위임하셨다. 그리스도는 그들이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는 일에 책임을 지도록 하셨다.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음으로 증언한,니라"(요15:27)
그러나 제자들은 그들에게 맡겨진 사역을 잘 감당할만한 훌륭한 학생들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진리를 가르치고 모든 오류에서 구해 주며 이미 배운 것을 다시 생각나게 하고, 가르치고자 하셨던 나머지 것들을 계시하시기 위해 그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말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14:26)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즉,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라고 명하신 것을, 그리스도께서 모두 그들에게 알게 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성령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말하라고 명하시는 모든 것을 알게 하실 것이다. 요12:49-50/  17:8,14을 보라)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요16:12-14)
이렇게 해서 "그가(내가 그를 보낼 대상인 너희, 즉 내 제자들에게)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성령의 증언하는 사역에 의해 구비되고 능력을 받아서) 너희도...증언하느니라"(요15:26-27)

그 약속은, 성령의 가르침을 받아서 제자들이 그리스도 의 대어나로 말할 수 있으리라는 것, 그래서 구약의 선지자들이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는 말로 설교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신약의 사도들도 말이든 기록된 가르침이든 그들의 가르침에 대해 똑같이 진실하게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고 말할 수 있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
사도 바울은 구원의 영광("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것")에 대해 이렇게 쓴다.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우리가...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그는 쓰거니와라는 말을 덧붙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친 것으로 하니"(고전 2:10-13)

성령은 사도들에게 모든 진리를 계시하시고 그것을 정확하게 전달하도록 영감을 주심으로써 증언하신다. 그래서 복음이 생기고 신약성경이 생긴 것이다.

우리는 기독교의 진리를 우리의 논증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 처럼 생각해서는 않된다. 눈 먼 마음을 새롭게 하시는 성령의 전능하신 역사가 없이는 어떤 사람도 기독교의 진리를 입증할 수 없다. 인간의 양심에 복음 진리를 깨닫게 하시는 것은 그리스도의 영의 주권적인 특권이다.

우리는 성령의 사역을 인식하고 그 사역에 의지함으로 성령을 영화롭게 하는가?
아니면 그 사역을 무시함으로 성령을 무시하고 그럼으로써 성령뿐 아니라 성령님을 보내신 주님까지도 모욕하는가?

우리의 믿음에서 성령께서 영감을 주사 선지자들이 쓴 구약 성경과 사도들이 쓴 신약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면 성령을 모욕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참되고 진심으로 말씀하고 계시며 그 말씀 배후에 계심을 인정하면서 누가 뭐라고 해도 성경 말씀에 따라 살지 않으면 성경을 우리에게 주신 성령을 모욕하는 것이다.

우리의 증거에서 성령만이 우리 증거가 참되다는 것을 인증해 주실 수 있음을 기억하며, 성령이 그렇게 하시도록 기대하고 그렇게 하실 것을 믿으며,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인간의 영리함에서 나온 책략들을 피함으로써 진정 성령을 신뢰하지 않는 것은 성령을 모욕하는 것이다.

우리의 교회 생활이 메마른 이유는 우리가 성령 충만하여 성령을 영화롭게 하지 안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끝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읽어주신 성도님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즉,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라고 명하신 것을 그리스도께서 모두 그들에게 알게 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성령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말하라고 명하시는 모든 것을 알게 하실 것이다. 요12:49-50 / 17:8, 14절을 보라)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요16:12-14)
이렇게 해서 "그가(내가 그를 보낼 대상인 너희, 즉 내 제자들에게)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성령의 증언하는 사역에 의해 구비되고 능력을 받아서)너희도...증언하느니라"(요15:26-27)




댓글



25-04-04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조회수 첨부 파일
공지 신앙도서 독서모임(베사모) 4기 회원을 모집하면서 김근택 2025-01-01 63
공지 신앙도서 독서모임(베사모) 3기 회원을 모집하면서 1 김근택 2024-01-08 130
공지 신앙도서 독서모임(베사모) 2기 회원을 모집하면서 김근택 2023-02-24 174
공지 베뢰아 사람들의 모임(신앙도서 독서모임) 2기 신입회원을 모집합니다. 박민하 2023-02-24 144
공지 베사모 모임 안내 김근택 2022-06-08 184
공지 신앙도서 독서모임(베사모) 초청의 글 김근택 2022-03-05 172
공지 베.사.모 활동을 위한 < 신앙도서 목록 >을 공유합니다.(업데이트 : 2024.02.02)    박민하 2022-02-25 186
공지 베뢰아 사람들의 모임(신앙도서 독서모임)을 소개합니다.    박민하 2022-02-25 192
77 하나님을 아는 지식 김근택 2025-03-31 6
76 그리스도인의 자존심 김근택 2025-03-18 11
75 도서소개:책 읽는 방법을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 1 김근택 2025-02-05 50
74 열혈 독서 1 김근택 2025-01-25 50
73 도서소개: 겸손 1 김근택 2024-12-07 58
72 도서소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100세 노인 1 김근택 2024-11-20 54
71 도서소개: 이것이 예배이다. 김근택 2024-11-08 58
70 도서소개: 행복한 양치기 김근택 2024-10-03 61
69 중보기도 파티를 읽고 4 김윤의 2024-08-27 115
68 도서소개: 기도는 거룩한 고민입니다 김근택 2024-08-25 81
67 도서소개: 하나님을 기뻐하라 1 김근택 2024-07-24 96
66 도서소개: 무엇이 성숙인가? 김근택 2024-07-04 92
65 도서소개: 치열한 도전 2 김근택 2024-06-08 83
64 도서 소개 -조니 에릭슨 타다의 희망노트 2 박계옥 2024-06-02 89
63 도서소개: 언어의 영성 김근택 2024-05-14 88
1 2 3 4 5 6